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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가 우리나라의 '제도' 는 아니다. 그냥 관행이고, 법적으로는 전세도 아니고 월세를 부담하지 않는 임대차이다. 전세권이라는 것은 사실 강력한 물권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집을 전세로 산다고 할 때는 전세권이 아닌 임차권으로 채권의 효력밖에 없다. 물론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로 어느정도 물권으로 만들어 임차인을 보호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채권에 불과하다.
임대차는 채권이라, 만약에 살고있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당연히 선순위 저당권자들이 먼저 배당을 받고 그 뒤에 다른채권자와 같이 배당을 받아야 하는데, 확정일자가 있으면 그 날짜 기준으로 예외적 우선권을 받게 된다. 원래 채권자동등원칙 (pari pasu) 에 의해 저당권자를 제외한 다른 채권자들은 순서에 상관없이 채권액에 따라 공평하게 분배받아야 한다.
전세는 안전한가?
그래서 전세는 안전한가? 미안하지만 전세는 세입자에게 가장 불리한 관행이다. 일단 감정가율대비 높은 가격에 전세(임차)를 들어가게 되면, 설령 본인이 최선순위라고 해도 경매가 낮게 이루어지면 보증금에서 손실을 떠안게 된다. 하지만, 이 채권은 소구 채권이라 경락대금을 받고 나서 (또는 집을 사버리든지)도 원래 집주인에게 채권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경매당한 집주인이 재산이 있으리라는 가정이 없다. 그래서 집주인이 파산하면 그냥 끝이다. 채권은 아무리 법정에서 승소판결을 받아도 채무자가 돈이 없고 배째라고 하면 그냥 그걸로 끝인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기죄로 고소하게 되는데, 사기죄는 임대차에서 원천적으로 성립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압박 수단도 없으며, 사기죄로 고소시에는 무고죄로 반소가 되면 더 골치아파진다. 애시당초 성립이 안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전세를 들어갈 때, 주변보다 좀 비싸도 집주인의 직업을 알아보는게 좋다.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이면 매우 좋고, 자영업자나 사업자의 경우 피하는게 좋다. 특히 직업도 없는데 집장사하는 사람들 집에는 절대 들어가면 안된다. 이런 경우에는 월세를 가는게 좋겠지만, 전세라는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부 갭투자다. 전세금으로 저리로 파이낸싱해서 집 투자를 하는 것인데, 이런 사람들이 추가적인 현금흐름이 있을리가 없다. 그래서 그렇게 전세가율이 80~90% 넘는데 집주인이 공무원이나 직장인 아니면 들어가지말라고 해도 굳이 들어가더라. 물론 전세가율이 시세의 60~70% 정도인 경우에는 다른대출이나 채권자가 없는 경우 큰 상관은 없다.
여기서 사족으로, 임대차시장에서 가장 갑은 누구일까? 집주인?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보통은 집주인이 갑인데, 임차인은 돈을 돌려받아야 다른곳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악용하는 집주인들이 많다. 하지만 최강자는 돈많은 임차인이다. 임대차가 채권이기 때문에, 임대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경우에 바로 임대차등기명령을 쏠 수 있고 이때부터 최고장 날린 후에는 집을 강제경매시켜버릴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등기명령 받고 집에서 나가야한다. 나가서 어디가서 살아야하니까 돈이 있어야한다. 돈있으면 임차인이 짱먹는다. 등기명령 받고 집주인이 배짼다고? 일단 등기명령이 떨어지면 등기부에 등기명령떨어진게 기록된다. 일종의 빨간줄. 그리고 보증금 연체일에 따라 이자를 지급해야하는데 이 경우에 법정 연체율 20%가 적용되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그거보다 낮게 명령이 떨어진다.) . 어딜가나 돈있는 놈은 잘먹고 잘산다. 씁쓸하지만 현실이다.
전세는 싼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보통사람들의 인식에는 월세는 없어지는 돈이고 전세는 남는돈이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는데, 관점을 좀 바꿔서 집주인 집담보로 내가 돈을 빌려준다고 생각해보자. 담보가치를 90% 잡아주고 돈을 빌려주면 이자를 얼마를 받아야 할까? 담보율 90%로 잡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여튼 그렇다면 이자를 얼마를 받아야하나? 담보대출 이자율인 4% 정도 받아야하나? 그런데 채무자가 공무원일때랑 무직인 사람일 때랑 똑같이 4% 받아야하나? 당연히 아니다. 공무원일때는 4.5% 라면 무직일 경우에는 8% 이상 받아야 한다. 당연히 신용도가 떨어지잖나. 전세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집주인의 신용도 체크가 필수인 임대차방식이다. 월세의 경우에는? 거의 상관없다.
따라서 동일 시세로 전세가격이 형성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집주인 (법적연결이 되어있는) 의 신용도에 따라 전세가 쌀 수도, 비쌀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비싸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집주인이 공무원/대기업직원 등의 현금흐름이 좋고 안정적인 경우에만 전세를 추천한다. 그런데 이런사람들은 대개 월세로 돌린다.
월세를 내면 웬지 공돈 나가는 것 같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경제적 관점에서 월급 500만원 받는데 월세 300만원내면 무리하는 것이다. 근데 세후로 월급 500만원 받는사람 우리나라에 많지 않다. 결론은 월급이 세후 500이고 월세가 300이면 그동네 살면 안된다. 살고싶으면 노후를 포기하든지. 그런데 전세는 10억정도인데 현금흐름 나가는게 없어서 이익인거 같나? 10억가지고 미국 하이일드채권펀드 넣어도 일년에 5천정도는 나온다. 전세 안살면 유동성확보되고 집주인 신용리스크 부담 안하고, 그리고도 1400은 남는다. 대체 왜 전세를 사나?
선진국에 전세제도가 없는게, 그들이 경제적으로 무식해서 그런게 아니다. 오히려 전세제도가 아직도 남아있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무식한 것이다.
갭투자자들이 임대시장의 공급자다?
이런 택도 없는 소리는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임대시장의 공급자는 월세공급자들이지 절대 전세공급자들이 아니다. 굳이 공급자 자를 붙이고 싶다면 부실채권공급자들이라고 할 수는 있다. 이유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고. 이들이 없어지면 공급이 사라진다고 이야기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이 좀 있는데, 이들이 파산한다고 해서 있던 집들이 사라지는게 아니다. 결국 리스크프리미엄과 월세수익률이 맞아떨어지는 지점까지 하락 후에 진짜 임대업자들이 들어와서 매수해간다. 당연한 시장경제원리를 왜 억지로 짜맞추나 모르겠다. 가격이 오를 때는 시장원리가 맞는 것이고, 떨어지면 시장원리에 역행한다는 토성인식 경제는 어디서 배운걸까.
경제는 대부분 시장에 맡겨야 한다. 갭투자자로 돈을 벌든 다른걸로 돈을벌든 상관없다. 개인적으로 집값이 오르든 말든 관심없다. 다만 일관성과 리스크리턴에 입각해서 생각할 뿐이다. 끝없이 가격이 오르는 자산도 없고, 끝없이 가격이 내리는 자산도 없다. 다만, 전세에 길들여진 임차인들까지 쓸데없는 리스크를 집주인과 공유할 필요는 없지 않나. 없는 사람 더 뜯어먹어 성장하려고 하는 주제에, 임대시장의 공급자니 뭐니 하는 소릴 지껄이면 한대 쥐어박고 싶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임대차형 전세라는 것이 우리나라 일반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기 보다는, 장기적 자산형성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도성장기에 금리가 높고 생산가능 인구가 급증하면서 부동산가격이 올라 서민의 자산증식수단이자 노후준비자산으로 각광받았지만, 이제는 그럴 시기가 아니다. 오히려 전세자금으로 묶인 자금을 노후준비에 사용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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